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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피엔 작성일21-06-05 11:50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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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부역혐의자 이기성과 전 예산교육장 이병학의 삶과 꿈

[오마이뉴스 박만순 기자]



▲ 증언자 이병학(이기성의 아들)
ⓒ 박만순


"계시오?" "네. 누굴 찾아오셨어요?" "자네가 이기성 선생 아들인가?" "네. 그렇습니다" "....."

지팡이를 짚고 온 초로의 신사는 16세 농투산이(농투성이) 이병학의 손을 꼭 잡고 "자네가....."라며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이기성 선생 아들이 농사꾼이라니..."라며 끝내 눈물을 흘린 이는 풀무학교 공동설립자인 주옥로였다.동행복권파워볼

공부보다 일을 더 많이 했던 풀무학교

홍동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할 엄두를 못 냈던 이병학은 이렇게 해서 1965년 4월 풀무학교에 입학했다. 풀무학교는 1958년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주옥로·이찬갑이 농촌지도자 양성과 농촌교육공동체를 꿈꾸며 세운 비인가 학교였다.

풀무학교 공동설립자인 이찬갑(1904~1974)은 평북 정주군 출신으로 무교회주의 운동가이다. 독립운동가이며 오산학교 설립자인 이승훈 선생의 조카 손자이며 역사학자 이기백과 국어학자 이기문이 아들이기도 하다.

주옥로는 해방 후 홍동초등학교 교사를 지냈고, 풀무학교를 세우는 데 주춧돌 역할을 했다. 그는 쌀 세 가마를 주고 폐업 상태였던 방앗간을 사들인 다음 방앗간 목재를 뜯어다가 학교 짓는 데 썼다.

왜 주옥로 선생은 이병학을 찾아가 '풀무학교에 오라'고 했을까? 더군다나 개학한 지 한 달이 지난 4월에 말이다. 이병학의 아버지 이기성은 주옥로와 함께 1946년부터 1949년까지 홍동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있었다. 옛 동료 교사의 아들이 고등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농사짓는다는 소문을 들은 주옥로가 뒤늦게 이병학을 찾아가 직접 입학을 시킨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병학이 책보를 메고 2km를 걸어 풀무학교에 다니게 됐다. 하지만 학교는 그가 상상한 것과는 달랐다. 한 학년에 1개 반으로 전교에는 반이 3개뿐이었다. 교실은 흙바닥에 책걸상과 칠판이 전부여서 6.25 피난 시절 부산의 '임시 학교'를 연상케 했다.

풀무학교 교사 월급이 형편 없어 대학 졸업자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농촌교육공동체를 꿈꾼 젊은 선생들인 유달영, 홍순명이 풀무학교를 지켰다. 재건국민운동본부 본부장을 역임한 국어교사 유달영은 함석헌이 쓴 글을 읽어주었는데, 당시 풀무학교에는 교과서도 없어 그때그때 프린트물로 수업을 했다. 음악은 인근 교회 전도사가 와서 찬송가를 가르쳤고, 과학은 방학 때 대학생들이 농활(농촌봉사활동) 와서 가르친 게 전부였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학교에서의 노동이었다. 풀무학교가 개교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운동장에서 자갈 골라내는 것부터 학교 건물 신축, 정비에 이르기까지 일은 끝이 없었다. 오전에만 수업을 했고 그후에는 전교생이 노동에 동원됐다. 전교생이 지게에 삽과 낫을 얹고 등교할 정도였고 오후에는 학생들이 지게를 지고 흙과 나무를 나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그러다 보니 홍동면에서는 풀무학교 학생들을 '똥통학교 학생'들이라 놀렸다.

이병학이 풀무학교에 가려면 면소재지의 홍동천을 지나가야 했다. 하지만 그는 친구들의 놀림을 받기 싫어 학교 다니는 3년 동안 한번도 그 길을 지나지 않고 먼길로 돌아다녔다.

인공 시절 교사였다는 이유만으로...

일제강점기 말인 1940년대 초 홍성군 홍동면에서는 청주이씨 소종회가 열렸다. 청주사범에 합격한 집안 사람 이기성의 지원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기성이가 청주사범에 합격한 것은 우리 집안의 영광이요. 많지는 않지만 우리 종친회에서 입학금 일부를 지원합시다"는 제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기성의 형 이기혁도 결단을 내렸다. 면서기 월급이 20원하던 시절인데 청주사범 입학금이 200원이었다. 농사꾼에겐 무척 큰 돈이었지만 입학금만 내면 기숙사와 수업료가 면제였기에 이기혁은 빚을 내 동생 기성의 입학금을 마련했다. 6.25 때만 해도 중학교 진학은 시골에서 교사 같은 공무원이나 양조장, 방앗간 집안에서나 가능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말해 무엇하랴.

그렇게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이기성은 청주사범을 나와 1946년 홍동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그러다가 큰 뜻을 품고 서울로 올라가 낮에는 교사 생활을 하고 밤에는 건국대학교 내 정치대학을 다녔다. 그러다 6.25가 터졌다. 이기성은 가족을 이끌고 걸어서 홍성까지 내려왔다. 당시 집 나이 2세였던 아들 이병학은 너무 힘들어 죽음 직전까지 갔다.

얼마 후 국군이 퇴각하고 인민군이 홍성에 진주했다. 인공 시절 인민군은 이기성에게 홍동초등학교 교사를 하라고 시켰다. 그런데 국군이 다시 돌아오자 이게 부역행위로 문제가 됐다. 이기성은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홍동지서에 자기 발로 찾아가 자수했다. "초등학교 교사는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닙니다. 북한군이 하라고 강권해서 할 수 없이 한 일입니다."

하지만 해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이기성은 인공 두 달 동안 홍동초등학교 교사를 한 게 '죽을죄'가 되어 1950년 11월 2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월현리 석산봉 기슭에서 학살당했다. 그의 나이 27세 때로 같은 마을 사람 이기생과 허군도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한겨울에도 홑저고리 입고 살아

1950년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이기성의 아내 이명화에겐 더 그랬다. 홍동지서 경찰들은 남편을 끌고 가 죽인 것도 모자라 집안물건을 전부 빼앗아갔다. 곡식, 이불, 옷, 살림살이를 전부 가져가 이명화의 홑저고리, 홑치마와 이병학의 기저귀만이 남았다. 한겨울에도 땔감이 없어 모자가 꼭 껴안고 긴 밤을 보냈다. 이명화의 손발은 동상에 걸려 푸르딩딩했다. 돌이 갓 지난 이병학이 피난길에 이어 두 번째로 죽을 뻔한 시절이었다. 때문인지 그는 다섯 살이 되도록 걷지를 못했다.

이명화가 품팔이를 하고 큰집에 가서 일손을 도왔지만 그저 하루하루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다행히도 큰아버지 이기혁이 초등학교, 중학교를 보내주었지만, 이병학이 중학교 3학년 때 큰아버지마저 파산했다. 이병학이 상급학교에 갈 꿈도 꾸지 못하고 집안일을 돕고 있던 터에 아버지의 동료 주옥로가 찾아온 것이다. 말 그대로 '구세주'였다.


▲ 증언자 이병학(이기성의 아들)
ⓒ 박만순


당시 풀무학교는 비인가학교였기에 검정고시를 봐야 고등학교 학력을 인정받았다. 이병학은 검정고시를 위해 홍성고등학교 다니는 친구들에게 국어, 영어, 수학, 과학책을 빌렸다. 수학을 빼고는 무조건 암기했다. 음악 시험 준비를 위해서는 '아리랑' 담배 3갑을 사갖고 홍성중학교 음악교사 최청산을 찾아가 3일 동안 음정 이론, 조바꿈 등을 배웠다. 현재 충남대학교 병원 자리에서 검정고시 시험을 봤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다음 목표는 공주교대 입학이었다. 이병학은 4.5: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장학생이 되기 위해 죽어라 공부만 했고 1970년 8월 31일 공주교대를 졸업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이 나지 않았다. 그는 주옥로를 찾아갔다. "신원조회에 걸린 것 같네. 내 알아봄세"라고 한 주옥로가 힘을 써, 홍동지서장이 인우보증서를 써줬다. '아버지가 부역자로 처벌되었으나, 아들 이병학은 근면 성실하여 교육계에 촉망되는 인물'이라고 읍소한 것이다.

또 대전고등학교 이종호 교장도 교육감에게 편지를 했다. 드디어 1970년 12월 13일 자로 홍동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이 났다. 아버지 이기성이 발령받은 지 24년 만의 일이었다. 이병학은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펼치는 것이 아버지를 위로하는 것이고, 어머니께 효도하는 길'이라고 결심했다.

예산교육장이 되다

학업에 대한 이병학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1974년에 숭전대학 영문과(야간)에 입학했다. 학교가 파하고 대전의 숭전대학교까지 가는 데 1시간 30분이 걸렸다. 저녁 먹을 시간도 없었다. 그 와중에 중등교원 자격시험에 합격해 홍성고등학교에 이어 광천상고에서 교사를 했다.

1990년에는 그에게 도전의 길이 열렸다. 평교사 출신 장학사 공채시험을 보게 된 것이다. 당시까지는 교감만이 장학사 시험을 볼 수 있었는데, 충남도교육청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평교사도 시험을 보게 한 것이다. 10명을 뽑는데 이병학이 15: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이후 그는 충남 온양의 충무교육원과 홍성교육청 장학사를 역임했다. 이후에 교감 자격증도 취득, 광천상고 교감과 홍성여중 교장을 지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예산교육장을 지냈다.

2011년 갈산고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이병학은 41년 교직을 떠나 정년퇴직했다. 첫 교사 발형 때 그가 한 결심,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펼치는 것이 아버지를 위로하는 것이고, 어머니께 효도하는 길'이라는 다짐을 실현했다.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그가 풀무학교를 거쳐 검정고시, 공주교대, 숭전대, 장학사시험 등의 과정을 거쳐 예산교육장이 되기까지는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머니 이명화, 큰아버지 이기혁, 풀무학교 공동설립자 주옥로, 대전고등학교 이종호 교장이 그들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그는 40여 년 교직생활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아버지 이기성의 꿈은 좌절되었지만, 아들 이병학이 아버지의 꿈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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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프로야구 토로톤의 류현진이 팀 야수진의 허술한 수비 속에 토론토 이적 후 최다인 7실점으로 무너졌습니다.

류현진은 미국 뉴욕주 버펄로의 세일런 필드에서 열린 2021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 5⅔이닝 동안 만루홈런 등 홈런 2개 포함 안타 7개를 얻어맞고 7실점(6자책점) 했습니다.

류현진은 0-7로 뒤진 6회초 2사에서 칼 에드워즈 주니어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교체됐습니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타율 전체 1위(0.264)인 휴스턴 타선을 상대로 고전했는데 올 시즌 처음으로 볼넷을 3개 허용했고, 삼진은 1개뿐이었습니다.

힘든 상대를 만난데다 수비까지 도와주지 않으며 류현진은 힘겹게 경기를 풀어가야 했습니다.

시즌 3패(5승) 위기에 몰린 류현진은 시즌 평균자책점이 2.62에서 3.23으로 치솟았습니다.

한 경기 7실점은 올 시즌 최다이자 토론토 이적 이후 최다 실점입니다.

팀이 0-3으로 뒤진 6회초 2사 만루에서 마틴 말도나도에게 초구 체인지업이 통타당해 좌월 만루홈런을 허용한 것이 뼈아팠습니다.

류현진이 빅리그에서 만루홈런을 맞은 것은 LA 다저스 시절이던 2019년 8월 24일 뉴욕 양키스전(디디 흐레호리위스)에 이어 개인 통산 두 번째입니다.

류현진은 투구 수 91개를 기록했습니다.

포심패스트볼 최고 시속은 92.4마일(약 149㎞), 평균 시속은 89.3마일(약 144㎞)로 평소보다 더 빨랐지만, 결정적일 때 상대 타선의 체인지업 노림수에 걸렸습니다.

1회초를 공 7개로 삼자범퇴 처리한 류현진은 2회초 선두타자 율리에스키 구리엘을 우익수 뜬공으로 돌려세우고 순항을 이어갔습니다.

요르단 알바레스의 날카로운 땅볼 타구는 1루수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가 백핸드 캐치로 건져내 류현진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습니다.파워볼

류현진은 국내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외국인 선수 프레스턴 터커의 친동생인 카일 터커를 좌익수 뜬공으로 요리하고 2회초 역시 삼자범퇴로 이닝을 정리했습니다.

류현진은 3회초 1사에서 발 빠른 타자 마일스 스트로에게 유격수 방면 내야안타로 이날 경기 첫 피안타를 기록했습니다.

2사에서 호세 알투베를 맞아 스트라이크 2개를 먼저 잡았으나 알투베가 유인구에 넘어가지 않으며 볼넷을 내줬습니다.

2사 1, 2루 위기에 몰린 류현진은 카를로스 코레아를 1루수 뜬공으로 요리하고 실점 없이 3회초를 건너갔습니다.

4회초에는 야수진의 아쉬운 수비가 나왔습니다.

선두타자 디아스에게 던진 2구째 컷패스트볼이 높게 제구되면서 3루수 옆을 꿰뚫고 좌익 선상으로 흘러나가는 안타가 됐습니다.

좌익수 로우르데르 구리엘 주니어가 빠르게 대처해 디아스가 2루로 가는 걸 막았습니다.

그런데 구리엘 주니어의 2루 송구가 엉뚱한 곳으로 향했고 디아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2루를 향해 뛰었습니다.

최초 기록은 디아스의 2루타였지만 이후 공식 기록원은 디아스의 단타와 좌익수 송구 실책으로 정정했습니다.

류현진은 계속된 1사 2루에서 알바레스에게 중견수 키를 넘기는 2루타를 얻어맞고 첫 실점 했습니다.

류현진은 이후 터커를 투수 땅볼, 채즈 매코믹을 중견수 뜬공으로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했습니다.

5회초에도 수비가 류현진을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선두타자 스트로의 날카로운 타구는 유격수 보 비??의 글러브를 맞고 옆으로 흘렀는데 비??이 느릿느릿 공을 따라가는 사이, 스트로는 2루까지 내달렸습니다.

억울하게 2루타를 내준 류현진은 계속된 1사 3루에서 알투베에게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또 1점을 내줬습니다.

아쉽게 실점을 허용한 류현진은 카를로스 코레아에게 좌월 솔로 홈런을 허용했습니다.

볼 카운트 2볼-1스트라이크에서 체인지업을 낮게 구사했으나 코레아가 잘 받아쳤습니다.

6회초에도 토론토 야수들은 집중력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선두타자 율리에스키 구리엘의 날카로운 땅볼 타구가 중견수 왼쪽으로 향했습니다.

단타로 그칠 타구였으나 중견수 랜덜 그리칙이 공을 더듬는 사이, 구리엘은 2루까지 진루했습니다.

이어 알바레스, 매코믹에게 볼넷을 내줘 1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는데 류현진은 스트로를 얕은 우익수 뜬공으로 잡아내고 한숨을 돌렸지만 9번 타자 말도나도에게 통한의 좌월 만루홈런을 얻어맞았습니다.

초구 체인지업이 덜 떨어지면서 말도나도의 노림수에 그대로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경기는 8회 현재 휴스턴이 토론토에 13대1로 크게 앞서고 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정희돈 기자(heedo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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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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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골프in=경남 거제 김상민 기자] 5일 오전 경남 거제시에 위치한 드비치GC(파72. 7,157야드)에서 2021 시즌 KPGA 코리안투어 '제11회 데상트코리아 먼싱웨어 매치플레이(총상금 8억원, 우승상금 1억 6천만원)’ 16강전 조별리그 제 1경기가 열렸다.

이원준이 9번홀 아이언샷을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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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가상화폐는 하루 거래 대금이 주식시장을 넘어설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많습니다. 비교적 적은 돈으로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격 변동폭이 워낙 크고 최근에는 투자자들을 노린 사기 범죄까지 잇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국이 뒤늦게 대책을 내놨는데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윤나라 기자가 집중 취재했습니다.

<기자>

이 20대 남성은 군 제대 후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가 거액의 빚을 지게 돼 대학에 복학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대 코인 투자자 : 계속 대출을 받아서 쓰고 있거든요. 그래서 또 대출하면 또 빚이니까.]

손실을 만회하려고 부모의 주택담보대출에까지 손을 댔지만 결국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20대 코인 투자자 : 엄마가 이제 주택을 사신다고 하셔서, 이게 주택담보 대출인데 그걸 이제 한 일주일 정도 잠깐 달라고 해서 (투자했는데) 다 청산이 돼서 0원이 됐어요. 그래서 총 2억 4천?]

암호화폐 투자자는 지난해 1월 104만 명에서 지난 4월, 511만 명으로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이 가운데 20~30대 투자자가 절반에 가깝습니다.

부동산보다 적은 돈으로 시작할 수 있고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어 투자에 나섰지만 관련 제도가 미비해 불안감도 크다고 말합니다.

[정혜민/대학생 투자자 : 어떤 거래소에 돈을 넣었는데 출금을 안 해주는 거예요. 사기범만 좀 잘 잡아주셨으면….]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이라며 투자 손실을 보호할 수 없다던 정부는 지난달 말 뒤늦게 대책을 내놨습니다.

금융위원회가 암호화폐 사업자 관리를 맡는 등 정부 9개 부처가 분담 관리한다는 내용입니다.

또 9월부터 투자자 개인정보 보호 체계를 갖추고 실명 계좌를 은행에서 확인받은 거래소만 영업할 수 있게 합니다.

현재 영업 중인 암호화폐 거래소 60여 곳 중 9월부터 적용되는 조건을 만족하는 곳은 4곳뿐.

[정재욱/변호사 : 일정 기간을 주고 거래소에 있는 자금을 반출하도록 할 겁니다. 그런데 자산이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는 거래소들은 그러지 못할 거라는 거죠. 그래서 (투자자의) 파산이나 이런 것들도 이루어질 수 있다.]

9월부터 시행되는 이른바 특정금융거래정보법은 자금세탁 방지가 주목적이라 투자자 보호엔 미흡하다는 게 중론입니다.

미국과 일본은 금융 당국이 암호화폐 상장을 심사하는 반면, 한국은 민간 거래소에서 심사를 맡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과 미국의 가장 큰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코인은 각각 12개와 58개에 그치지만, 한국은 178개에 이릅니다.

부실한 암호화폐 난립을 막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늘어나는 암호화폐를 관리할 의지도, 뚜렷한 투자자 보호책도 내놓지 않는 정부는 내년부터 암호화폐 거래에서 발생한 이득에 20%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습니다.

[암호화폐 거래소 사기 피해자 : 투자자 보호는 하나도 안 하면서…너희 돈 벌었으니 앞으로 (세금) 때릴 거야.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정재욱/변호사 : 세금이 부과된다면 그만큼 책무가 뒤따라야 된다고 생각이 들고요. 현황을 파악한 다음에 규제와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거죠.]

(영상취재 : 박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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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나라 기자 invictu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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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사랑에 빠진 클럽 경호원과 여대생. (트위터 갈무리) © 뉴스1
29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사랑에 빠진 클럽 경호원과 여대생. (트위터 갈무리) © 뉴스1
(서울=뉴스1) 최서영 기자 = 영국의 한 클럽에서 만나 29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해 가정을 꾸린 커플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4일(현지 시간) 영국 더 선 등 현지 언론은 영국 미들즈브러에 사는 로렌 커(26)와 남편 앤서니 셰일러(55)의 특별한 만남을 전했다.

지난 2017년 여대생이었던 로렌은 친구들과 함께 클럽을 찾았으나 다른 무리와 사소한 시비가 붙었다.

당시 클럽을 지키던 경호원들이 상황을 정리했고 싸움을 벌인 로렌은 클럽 밖으로 쫓겨났다.

이때 클럽 가드로 일하던 앤서니는 여대생 로렌을 가차 없이 쫓아내며 집에 가라고 소리쳤다. 로렌은 그런 앤서니의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

이후 며칠 후 새 직장에 출근한 로렌은 그곳에서 마침 같이 새로 일하게 된 앤서니를 만났다. 앤서니 역시 클럽 경호원 일을 그만두고 새롭게 직장을 구한 것이다.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렸고 사랑에 빠졌다.

29살의 나이 차 때문에 주변의 반대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결혼했고 지난해 4월 첫째 딸을 낳았다. 지금은 둘째가 태어날 날을 기다리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로렌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이 많은 사람과 함께 해서 좋은 점은 안정적이고, 안전한 느낌이다"라며 "풍부한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여유와 자신감이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파워볼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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