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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피엔 작성일21-02-06 16:36 조회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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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전국적으로 포근한 낮 기온을 기록한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을 찾은 시민들이 외출을 즐기고 있다. 20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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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김현수가 1일 경기도 이천시 LG챔피언스파크에서 진행된 스프링캠프에 참여해 타격 훈련을 하고있다. 2021.02.01.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어떻게 말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늘 이렇게 하는 스타일이다.”파워볼게임

LG 캡틴 김현수(33)는 스스로를 “성공한 야구 덕후”라고 칭했다.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 것과 더불어 꾸준히 야구선수로 뛰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야구를 못하게 되는 게 가장 두렵다”면서 “신인 때부터 그랬다. 언제부터 못하게 될지 그 시기가 다가오는 게 늘 불안하다. 그래서 더 운동을 많이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몸에 무리가 온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항상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강하다”고 털어놓았다. 기량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좋아하는 야구를 못하게 되는 순간에 대한 두려움을 솔직히 표현한 것이다.

김현수는 팀내에서 표지션을 막론하고 가장 훈련량이 많다. 더불어 포지션과 상관없이 지식도 풍부하다. 시즌과 비시즌, 그리고 캠프 기간까지 시기에 따라 맞춤형 훈련법도 뚜렷하다. 늘 건강식을 섭취하며 후배들에게 나눠 준다. 부진으로 고민하는 후배에게 꾸준히 팁도 건넨다. LG 오지환은 “현수형이 오면서 우리팀 색깔이 바뀌었다. 진정한 리더”라며 “원래 우리팀 주장 임기는 2년이었다. 지난 시즌 후 현수형이 나보고 주장하라고 했는데 내가 못한다고 했다. 현수형에게 계속 주장해달라고 부탁했다. 단장님께도 현수형이 계속 주장할 수 있게 6년이든 7년이든 FA 계약 해달라고 했다”고 김현수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설명했다.

이는 숫자로도 고스란히 나온다. 김현수는 실질적인 데뷔시즌이었던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 동안 연평균 127경기를 뛰었다. 더불어 팀성적도 꾸준히 좋았다. LG 입단 첫 해였던 2018년과 두산에서 뛰었던 2011년과 2014년을 제외한 11년 내내 포스트시즌 무대에 올랐다. 개인 통산 타율 0.322 1799안타 195홈런 1073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98를 기록 중이다. LG에서 3년 동안 399경기 타율 0.331 505안타 53홈런 302타점 OPS 0.906으로 펄펄 날았다. 30대가 됐으나 본인이 우려한 에이징 커브와는 무관한 커리어를 쌓고 있다.

LG 류지현 감독이 지난 2일 오전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진행된 스프링캠프 중 선수들에게 펑고를 쳐주고 있다. 이천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ul.com

이렇게 직접 보여주고 증명하다보니 사령탑 입장에서 김현수는 누구보다 믿음직한 상수다. LG 류지현 감독은 “김현수는 타순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잘하는 참 고마운 타자”라며 “나는 현역시절 타순이 바뀌면 많이 힘들었다. 주로 1번 타자로 나갔는데 9번 타자로 나가면 정말 이상했다. 마치 경기를 3회부터 시작하는 기분이 들더라. 그런 면에서 현수는 참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실제로 김현수는 지난 3년 동안 2번부터 4번까지 꾸준히 타순이 바뀌면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2번 타순에서 타율 0.345 OPS 0.978, 3번 타순에서 타율 0.340 OPS 0.942, 4번 타순에서 타율 0.324 OPS 0.873을 올렸다. 류 감독은 캠프 진행 상황을 바라보며 이병규·임훈 타격코치와 함께 다가오는 시즌 최적의 타순을 구상할 계획이다. 어디서든 잘 하는 김현수와 팀 전체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타선을 구축하는 게 목표다.

류 감독은 “오후 개인 훈련시간에도 현수는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치고 있는다. 어떻게 말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현수는 늘 이렇게 하는 스타일”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 1일 캠프 첫 날 김현수는 “챔피언스파크에서는 24시간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 외국에서 캠프를 하면 이동시간도 있고 시설을 사용하는 시간도 제한된다. 여기는 언제든 쓸 수 있다. 더 많이 훈련하고 야구할 수 있으니 참 복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짐대로 캠프 초반부터 부지런히 배트를 돌리는 김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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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조두팔 인스타그램


아시아투데이 박세영 기자 =유튜버 조두팔이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조두팔은 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 사람이 과거에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음에도 시간이 지나 지금도 날 사랑해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했고 예전과는 다른 모습에 기대 아닌 기대 하며 만남을 가졌다”라고 적었다.

이어 “그 만남은 내 인생에서 제일 최악이었다.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미래 계획을 하며 동거까지 하고 서로에게 애틋한 만큼 기댈 수 있는 사이였고, 이젠 나에겐 그 사람이 전부일 만큼 없으면 안 될 만큼 소중한 사람이었다”고 털어놨다.

조두팔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에 대한 불신이 커져만 갔고 자꾸만 신뢰가 깨지는 행동들로 인해 어느새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다 깨져버렸다”며 “반복되는 거짓말들과 캐면 캘수록 나오는 충격적인 일들로 인해 어느새 난 많이 지쳐있었고 여자 관련된 일이라는 게 너무 싫었다”고 밝혔다.

또한 “그런데도 놓치기 싫었던 내가 너무 한심하다 그냥 그 사람을 믿고 싶었던 것 같고 현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몇 번 다퉜고 다투면 다툴수록 그 사람의 손버릇이 점점 심해져만 갔고 결국엔 최악의 상황까지 가버렸다”며 “그 사람은 내가 폭력을 제일 싫어하고 어렸을 때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고 있음에도 이별을 말할 때마다 나에게 폭력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결국 이런 상황까지 오게 한 나도 원망스럽고 걔도 너무 밉다 그냥 죽고 싶었다. 너무 그 외에도 말 못할 만큼 충격적인 일들이 많았지만, 그냥 말하기 싫다. 지금 내 인생은 정말 최악이다. 이 사람으로 인해서 깨닫게 된 것도 정말 많았고 왠지 모르게 지금껏 내 주변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심경을 고백했다.

한편 조두팔은 4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로 메이크업, 먹방 영상을 올리며 인기를 모았다.

ⓒ "젊은 파워, 모바일 넘버원 아시아투데이"

[편집자주]북한은 200개가 넘는 역사유적을 국보유적으로, 1700개 이상의 유적을 보존유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지역적 특성상 북측에는 고조선과 고구려, 고려시기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난 75년간 분단이 계속되면서 북한 내 민족문화유산을 직접 접하기 어려웠다. 특히 10년 넘게 남북교류가 단절되면서 간헐적으로 이뤄졌던 남북 공동 발굴과 조사, 전시 등도 완전히 중단됐다. 남북의 공동자산인 북한 내 문화유산을 누구나 직접 가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며 최근 사진을 중심으로 북한의 주요 문화유산을 소개한다.

(서울=뉴스1) 정창현 머니투데이미디어 평화경제연구소장 = 개성 시내 정중앙에는 104m 높이의 자남산(子男山)이 솟아 있다. 북쪽의 송악산과 남쪽의 용수산 사이다. 일제강점기 때 자남산 정상 부근에는 신사(神社)가 있었고, 지금은 김일성 주석의 동상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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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시내 남쪽 용수산에서 본 자남산 전경. 자남산 남쪽 입구 초록색 한옥지붕 건물이 통일관이고, 거기서 동쪽으로 500미터쯤 가면 숭양서원, 표충사, 선죽교가 나온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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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자남산 관덕정의 모습.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산의 남서쪽에 있는 관덕정(觀德亭)에 오르면 전통가옥이 집중적으로 남아 있는 개성민속거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현재 300채 가량의 전통가옥이 온전하게 밀집한 형태로 남아 있고, 북한은 1975년 이곳을 '민속보존거리'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자남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서쪽에 초록 지붕의 '통일관'(식당)이, 동쪽에는 개성백화점이 자리하고 있다. 통일관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개성남대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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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자남산 관덕정에서 본 민속거리의 과거(1950년대 중반)와 현재(2019년) 모습.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자남산의 남동쪽 자락에는 고려 말의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세 개의 역사유적이 남아 있다.

첫 번째 유적이 유명한 선죽교(善竹橋, 국보유적 제159호)다. 1392년(조선 태조 즉위년) 정몽주가 후에 태종이 된 이방원(李芳遠) 일파에게 피살된 장소다. 원래 선지교(善地橋)라 불렸는데, 정몽주가 피살되던 날 밤 다리 옆에서 참대가 솟아 나왔다 하여 선죽교로 고쳐 불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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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만든 개성관광안내도.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선죽교는 개성 남대문에서 동쪽 약 1km 거리의 자남산 남쪽 개울에 있다. 태조 왕건이 919년(태조 1) 송도의 시가지를 정비할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리의 길이는 8.35m이고 너비는 3.36m이다.

정몽주는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 회군에는 찬성했지만 역성혁명(易姓革命)에는 반대했다. 이성계와 이방원은 그를 회유했지만 그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란 내용의 '단심가'(丹心歌)로 고려에 대한 충절을 표시했다.

결국 1392년 4월26일(공양왕 4년) 선죽교에서 최후를 맞이한 그는 역적으로 단죄되고, 수급과 시신은 저잣거리에 매달려졌다. 역적으로 몰려 방치된 시신을 문신 우현보(禹玄寶)와 송악산의 중들이 수습해 개경에 가매장했고, 후일 경기도 용인으로 이장됐다. 두 달 후 우현보는 경주로 유배당했고, 아들 5형제도 모두 유배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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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가 피살당한 개성 선죽교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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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가 피살당한 개성 선죽교 측면.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정몽주가 죽은 지 9년 뒤인 1401년(태종 1년) 이방원은 왕위에 직후 그를 영의정에 추증하고 충절의 표상으로 삼았다. 정몽주의 문하생인 권우에게서 학문을 배운 세종도 그를 충신으로 추앙했다. 역성혁명의 앞길을 막는 정몽주는 제거할 수밖에 없었지만 고려에 대한 충심은 인정한 것이다.

이후 선죽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개성을 찾았을 때 꼭 돌아보는 장소가 됐고, 일제강점기 때는 개성을 방문한 수학여행단의 기념촬영지로도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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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개성 선죽교를 방문한 여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선죽교 부근에는 조선 시기에 정몽주의 애국충정을 길이 전하기 위해 만든 여러 유산들이 있다. 선죽교의 가장자리에 있는 난간은 1780년에 정몽주의 후손인 정호인이 선죽교에 사람들의 통행을 금지시키기 위해 세운 것이다. 지금도 다리 대리석 위에 있는 검붉은 자욱이 정몽주가 흘린 핏자국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또한 주변에는 정몽주의 충절을 추모하며 세운 '읍비(泣碑)'(1641년)와 정몽주와 함께 죽은 녹사 김경조를 위해 세운 2개의 비(1797년, 1824년), 조선 시기의 명필인 한호(한석봉)가 쓴 선죽교비, 정몽주의 충절에 감동해 그의 시신을 거두어 준 고려의 관료 성여완의 집터비가 있다. '읍비'는 울고 있는 비라는 뜻이다. 이 비는 늘 축축이 젖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비가 정몽주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 있는 것이라고 하여 그렇게 불렀다. 비에는 "일대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마음은 만고에 모범이라(一大忠義 萬古綱常)"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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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죽교의 동쪽 옆에 서 있는 비각과 비. 비각 안에는 1641년(인조 19)에 목서흠이 세운 읍비(泣碑)가 있다. 비각 앞에는 정몽주와 함께 죽은 녹사 김경조(金慶祚)의 사적(事蹟)을 담은 2개의 비가 서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선죽교 서쪽에는 조선시대 영조와 고종이 충신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표충비(국보유적 제 138호) 2기가 보존돼 있다. 모두 비각 안에 있으며 비각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비각은 정면 4칸(11.41m), 측면 2칸(5.25m)의 팔작지붕집으로, 북에 남아 있는 비각 중 가장 크다. 비각 앞마당에는 수령 300년 된 은행나무가 서 있다.파워볼

비는 건립 연대가 서로 다르지만 한 비각 속에 암수 거북이 한 쌍이 나란히 받치고 서 있다. 왼쪽(북쪽)에 있는 것이 1740년(영조 16)에 세운 것이고, 오른쪽(남쪽)에 있는 것이 1872년(고종 9)에 세운 것이다. 비신(碑身)에는 고려왕조의 충신이었던 정몽주의 충의와 절개를 찬양하는 영조와 고종의 어필이 새겨져 있다.

영조의 시에는 산악같이 높은 절개를 지닌 고려말기의 재상이었던 정몽주의 도덕과 충정은 만고에 전해지리라고 쓰여 있고, 고종의 시에서는 정몽주의 충정과 절개가 온 우주에 빛나며 그가 있어 우리나라 도덕이 이어진다고 적혀 있다.

거북이를 형상한 받침돌(귀부)은 10톤이 넘는 화강석 통돌을 섬세하게 가공해 만들었다. 비몸(비신)은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비 머릿돌(이수)은 화강석으로 합각지붕 형식으로 만들었다. 아래 면에는 네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대칭으로 새겼다. 표충비는 거북을 새긴 조각 솜씨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말기의 석비 양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유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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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각과 표충비. 표충각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으며, 동쪽 담장 중심에 삼문(三門) 형식의 문이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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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각 안의 표충비. 사진 앞쪽의 것은 1740년(영조 16)에 세웠고, 위쪽의 것은 1872년(고종 9)에 세웠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선죽교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또 하나의 정몽주 관련 유적이 나온다. 1573년(선조 6) 개성유수 남응운(南應雲)이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고 서경덕(徐敬德)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숭양서원(崇陽書院, 국보유적 제128호)이다.

처음에는 선죽교 위쪽 정몽주의 집터에 서원을 세우고 문충당(文忠堂)이라 했다. 1575년(선조 8)에 '숭양(崇陽)'이라는 사액(賜額)이 내려져 국가 공인한 서원으로 승격됐고, 1668년(현종 9) 이후 김상헌(金尙憲)·김육(金堉)·우현보 등을 추가로 배향했다. 경내에는 내·외삼문, 동·서재, 강당, 사당이 있다. 1633년에 강당을, 1645년에 사당을 보수했으며, 1823년에 다시 전반적인 보수가 있었다.

출입문인 외삼문은 5단의 높은 장대석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북측 안내원은 우스게 소리로 '높은 사람을 배알하기 위해서는 몸 낮추어 힘들게 올라와야 된다고 가파르게 만들어 놨다'고 설명했지만,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기단을 높이 쌓은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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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양서원 출입문인 외삼문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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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양서원 출입문인 외삼문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가파른 계단을 올라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마당 안쪽에 강당이 있고 그 앞 양쪽에 동재와 서재가 마주 서 있다. 강당은 높은 기단 위에 세운 정면 5칸, 측면 3칸 건물이다.

내삼문으로 들어가면 사당인 문충당이 나온다. 이 사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으로, 2칸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1칸 온돌방이 있는 구조이다.

숭양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된 47개 서원의 하나로 남아 선현을 봉사(奉祠)하고 지방교육을 담당했다. 1894년부터 한문을 가르치는 학당으로 이용되었고 1907년부터 약 3년간 '보창학교'로, 그 후에는 한문강습소로 이용됐다. 이 서원은 '임진왜란' 이전에 건축된 서원의 전형적인 배치 형식과 구조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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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양서원 가장 뒤쪽에 자리 잡은 사당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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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양서원 사당 안에 있는 정몽주의 초상화.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했던 정몽주와 정도전(鄭道傳)은 새로운 왕조 건설을 두고 다른 선택을 했지만 최후는 비슷했다. 정몽주는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 이방원에게 암살됐고, 정도전은 조선 건국에 참여해 왕조의 기틀을 잡았지만 역시 이방원에게 최후를 맞았다.

그러나 조선시대 때 사후 평가는 달랐다. 정몽주는 건국 초기에 복권돼 충절의 상징으로 추앙됐지만, 정도전은 조선 말 흥선대원군 섭정기에 이르러서야 공식적으로 신원 회복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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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디딜 틈없는 수원 못골시장..정육점·생선가게 '북적'
마스크하면 안전하다는 인식 자리잡아..재난지원금 덕도
코로나19 불황 속 설 명절을 앞두고 모처럼 활기 찾은 수원 못골시장. © 뉴스1

코로나19 불황 속 설 명절을 앞두고 모처럼 활기 찾은 수원 못골시장. © 뉴스1
(경기=뉴스1) 최대호 기자,유재규 기자 = "동태포 한 접시에 4000원, 두 접시에 7000원, 세 접시에 만원. 싸게 가져가세요."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경기 수원지역 대표 전통시장의 활기는 꺾지 못했다.

민족 대명절인 설을 일주일 앞둔 6일 오후 수원 남문지역 9개 전통시장 가운데 한 곳인 못골시장은 골목 전체가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방문객과 상인 모두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점 말고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임을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처음에는 코로나가 무서워서 사람들이 안 나왔지. 지금은 마스크 잘 쓰고, 서로 음식 나눠먹지 않고 하면 괜찮다는 걸 사람들이 아는 거지."

40년간 못골시장을 지키며 이곳 산증인으로 알려진 만두가게 사장은 "지난해 추석때보다 이번에 손님이 더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만두가게 안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대통령 되시기 전에 찍었던 사진"이라며 "못골시장이 수원시 대표 전통시장이다보니 정치하는 분들도 많이 오신다"고 했다.

시장을 찾은 손님들의 시선은 매장을 향해 바쁘게 움직였다.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좋은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유심히 살펴보는 손님과 그런 손님을 한명이라도 더 받으려는 상인들로 시끌벅적했다

마스크 없이 시장을 찾은 손님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전통시장은 코로나19로 침체됐던 최근까지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이날 못골시장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곳은 정육점과 생선가게.

정육점 사장은 신선한 고기를 사기위해 줄은 선 손민들을 향해 "바빠서 고기 손질을 해드릴 수가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는 "손질할 시간이 없어 덩어리로 잘라 판다. 그만큼 손님에게 싸게 드릴 수 있다"며 "예년 매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걱정했던 것 보다는 손님이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고무 재질 앞치마를 두른 생선가게 사장은 "때마침 재난지원금이 나와줘서, 그 덕도 좀 있는 것 같다"며 "지역화폐 카드 사용하시는 분들이 부쩍늘었다"고 귀띔했다.

경기도 2차 재난기본소득 신청 첫날인 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못골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물품을 구매하고 있다. 2차 재난기본소득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신청, 현장 수령, 찾아가는 신청서비스 등 3가지 방법으로 지급되며 온라인 신청은 3월14일까지 가능하다. 2021.2.1/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경기도 2차 재난기본소득 신청 첫날인 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못골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물품을 구매하고 있다. 2차 재난기본소득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신청, 현장 수령, 찾아가는 신청서비스 등 3가지 방법으로 지급되며 온라인 신청은 3월14일까지 가능하다. 2021.2.1/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5인이상 모임금지 행정명령으로 인해 설 차례상을 준비하지 않는 가구가 늘어서인지 건어물 가게와 떡집은 상대적으로 손님이 많지 않았다.

건어물 가게 사장은 "가족끼리도 5명이상이면 모이지 말라는데, 그 영향도 조금은 있는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준비할 사람들은 다들 (준비)한다고는 하더라. 지난 추석때보다는 상황이 좋아졌다. 하루빨리 코로나 상황이 끝났으면 한다"고 바랐다.

과일가게 앞에서는 일일이 가격을 물어보며 무엇을 살까 고민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과일가게 사장은 "작년 긴장마로 인해 과일 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 코로나로 주머니가 가벼워지다보니 값오른 과일을 사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예전에는 선물로 사가는 이도 많았는데, 차례상에도 과일 5개 놓을 걸 3개만 놓는다더라"며 하소연했다.

떡집 사장은 "(장사가)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비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며 "그래도 어디 우리만 어렵겠냐. 모두다 힘든 시기인데, 새해 덕담처럼 올해는 코로나도 끝나고 모든 일이 다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밝혔다.파워볼실시간

sun070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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